매년 이맘때면 포루투갈의 포르토(Porto), 정확히는 포루토 옆의 작은 항구도시인 마토시노스(Matosinhos)에서 월드컵이 열립니다. 2007년에는 블롬달 선수가 우승, 김경률 선수가 8강을, 작년에는 야스퍼스 선수가 우승, 김경률 선수가 4강을 기록했던 대회이기도 하죠. 올해는 한국 선수가 무려 10명이나 출전을 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기대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경기장의 모습입니다. 보통 유럽의 여러 경기들이 테이블 4대 정도의 작은 홀에서 열리는데, 포르토 월드컵은 큰 체육관(Congress Center의 스포츠 체육관입니다)에서 열리기 때문에 조금은 산만한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관중석이 한쪽면에만 있어서 집중이 잘 안되고 테이블이 멀리 있는 느낌이 듭니다. 관중석 반대편 쪽에서 하는 경기는 공의 정확한 포지션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번째 사진에 자네티 선수가 연습을 하고 있는 가운제 테이블에서 준결승, 결승전을 치루고 이 테이블의 경기는 모두 스포츠 채널을 통해 전 유럽에 생중계되었습니다. 허정한 선수와 뷰리 선수의 8강전 경기, 그리고 조재호 선수와 니코스 선수의 준결승 경기도 모두 생중계되었습니다.
블롬달, 야스퍼스, 코드롱, 산체스의 4대천왕이 모두 32강에서 떨어졌는데, 이는 테이블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대회 테이블이 상당히 어려웠는데, 조금만 강하게 쳐도 쿠션에서 공이 확 튕겨버리는 등 관전하는 제가 보기에도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시드배정 멤버가 아닌 선수들은 32강 본선 전에 이미 여러게임을 하고 올라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테이블을 파악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입니다. 반면 시드배정을 받은 12명의 선수들은 본선 당일 게임 시작 전 5분간의 연습시간이 유일합니다. 특히나 월드컵 처럼 15점 승부의 경우에는 테이블 파악을 미쳐 다 하기도 전에 경기가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가까스로 8강에 오른 자네티 선수도 경기 내내 테이블의 상태를 관중들에게 호소하는 제스쳐를 취하곤 했습니다(이건 사실 좋은 매너는 아니죠).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10명의 한국 선수 중 무려 5명(김경률, 강동궁, 허정한, 김정규, 조재호)이 16강에 진출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국외 대회 역대 최다 참가인원이자 역대 최고의 성적입니다. 김정규 선수는 한국팀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하여 아직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이며 16강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조재호 선수는 블롬달, 마틴 혼 등 최정상의 선수들을 하나씩 누르고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한국팀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한 김정규 선수

조재호 선수와 마틴 혼 선수의 8강전 경기모습
조재호 선수와 니코스 선수의 준결승전은 너무도 아까웠습니다. 처음 1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두번째 세트를 가져오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조재호 선수의 샷 감각이 상당히 좋아보였습니다. 세번째 세트에서 조재호 선수가 절정의 감각으로 4이닝만에 12:5로 앞서나가던 상황이었습니다. 분위기 상 이번 세트를 따내면 다음세트까지 마무리 할 수 있을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니코스 선수가 갑자기 집중력을 발휘하더니 거의 완벽에 가까운 포지션 플레이로 10점을 한번에 마무리했습니다. 니코스 선수는 운도 많이 따라줬는데, 특히 조재호 선수의 뒷공이 디펜스가 잘 안되서 쉽게 득점으로 연결하였고, 또 그런 쉬운 득점 뒤에 다음 포지션이 정말 잘 따라줬습니다. 니코스 선수 득점의 거의 1/3이 제각돌리기였던 것 같습니다;; 조재호 선수는 4세트에서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역전을 노렸으나 니코스 선수의 상승세를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6강에 오른 강동궁 선수
강동궁 선수는 32강전에서 현 세계랭킹 1위 야스퍼스 선수를 3:1로 제압하고 올라와 그 어느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6강에서 만난 니코스 선수는 생각보다 뒷심이 강했습니다. 세트스코어 1:1 상황에서 중요한 3번째 세트를 15:14로 이기고 한껏 부풀어 올랐으나, 나머지 두 세트를 내리 내주면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반에 니코스 선수가 노련하게 경기운영을 하기도 했지만, 강동궁 선수 스스로가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연발하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본인도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 한국 선수들 중 허정한 선수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최근 무서운 상승세로 국내 대회를 휩쓸고 있지만 과연 국제무대에서도 통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허정한 선수를 얕잡아 본 저의 기우였습니다.

8강 및 베스트 게임 상을 받은 허정한 선수
비록 8강에서 아쉽게 뷰리 선수에게 석패하였지만 경기 내용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특히 안정적인 스트록과 집중력이 작년에 비해 현저하게 좋아졌습니다. 다만 경기 중반 이후 뷰리 선수의 플레이에 조금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뷰리 선수가 워낙 인터벌이 길고 늘 제한시간 3~4초를 남기고 샷을 하는 등 상대방 입장에서는 상당히 짜증나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런 긴 인터벌로 7점 이상의 다득점을 하고나면 상대 선수는 거의 10분만에 타석에 들어서기 때문에 리듬을 쉽게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허정한 선수는 꾸준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경기를 주도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허정한 선수의 집중력은 김경률 선수와의 16강전에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국내 탑랭커이고,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허정한 선수의 완승이었습니다. 김경률 선수가 미처 손을 써볼 틈도 없이 몰아붙이며 불과 1시간만에 세트스코어 3:0으로 제압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허정한 선수의 에버리지는 2.812, 하이런은 12점을 기록했으니 김경률 선수가 아닌 누가 맞붙었더라도 이기기 힘들었을겁니다. 이 경기로 허정한 선수는 베스트 게임상을 받았습니다. 또 허정한 선수는 G.A. 2.014로 대회 참가자 중 유일하게 2점대의 에버리지를 기록했습니다. 하이런 또한 12점으로 5위안에 들어갑니다. 허정한 선수의 최근 행보로 볼때 이런 기록이 이번 대회에 반짝하는 단발성은 아닐것입니다. 아마도 김경률 선수에 이어 시드 배정자 명단에 올라갈 가장 강력한 후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경률 선수와 허정한 선수의 16강 래그 장면
허정한 선수는 최근 김치빌리아드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국제대회 참가시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랭킹을 올리기 위해서는 1년이상 꾸준히 국제대회에 참가해야하는 선수입장에서는 여행경비 등의 부담없이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으므로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정한 선수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선수들이 스폰서 계약을 맺으며 국제대회에 꾸준히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수 뿐만이 아니라 당구 동호인이나 당구팬 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주면 많은 기업들이 스폰서 대열에 참여할 것이고, 프로 당구의 출범도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할 것입니다.
허정한 선수의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정문영 선수의 내조가 최근 좋은 성적들의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허정한 선수와 정문영 선수가 연인사이라는 사실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당구팬들중에 모르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77년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고, 특히나 정문영 선수가 허정한 선수의 경기때마다 늘 같이하고 응원해주어서 허정한 선수가 심적으로 큰 안정감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허정한 선수와 정문영 선수
대회 결승전은 조재호 선수를 이기고 올라온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 선수와 뷰리 선수를 3:0으로 제압하고 올라온 에디 먹스 선수의 대결이었습니다. 에디 선수는 최근 엄청난 상승세에 있습니다. 거의 매 대회마다 15점 이상의 하이런을 기록하고 있으며, 탑 랭커들을 3:0으로 제압하는 경기가 많아졌습니다. 성격과 인품도 좋아 현지의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니코스 선수는 꾸준히 시드배정을 받지만 큰 대회에서 우승이 거의 없는 선수입니다. 상당히 인터벌이 짧고 매우 쉽게쉽게 득점을 하기 때문에 팬들의 눈에는 확 띄지 않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포지션 플레이에 능하다는 뜻이 됩니다. 실제로 니코스 선수의 대부분 득점은 뒤로 돌려치기와 제각돌리기입니다. 최근 니코스 선수의 득점력과 경기 운영능력이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보다 경기중 흥분하는 모습(테이블 수평이 안맞아서 공이 흐르거나 아깝게 득점에 실패했을때 혼자 분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줄었고, 일부러 감정을 자제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에디먹스 선수의 큐에 관한 '잠깐 딴소리' 보기
에디 먹스 선수는 롱고니社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에디먹스(EM, EM2)큐를 스테디 셀러로 만들었습니다. 롱고니社 얼마전부터 EM3 큐의 발매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 에디 선수는 EM3큐의 거의 최종 완성 모델로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EM3큐가 조만간 발매될 예정인데, 에디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함으로써 EM3의 인기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디 선수가 이번 대회에 사용한 롱고니 EM3 큐
두 선수의 경기는 역시나 박빙이었습니다. 서로 한세트씩 주고받는 공방전 끝에 에디 먹스 선수의 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두 선수 모두 빠른 템포와 공격적인 플레이로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이번 대회 우승자 에디 먹스 선수

준우승을 차지한 니코스 폴리크로노폴로스 선수
에디 선수는 2.153의 높은 에버리지를 기록하며 1.760을 기록한 니코스 선수를 득점으로 눌러버렸습니다. 모든 세트가 5이닝 이내에 끝이 났고, 5세트 모두 선공을 잡은 사람이 승리했습니다. 기록만 보더라도 최고 수준의 경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니코스 선수도 상당히 높은 에버리지를 기록했으나 에디 선수의 가공할 득점력을 따라잡지는 못했습니다. 경기 중반 나온 에디 선수의 난구 풀이들은 에디 선수에 대한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하나씩 다루어볼까 합니다.
경기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던 에디 선수는 마지막 앞으로 짧게 돌려치기 공이 성공하자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에디 선수는 15점 연속득점(두옹 안부 선수와의 8강전 3번째 세트에서 기록)으로 하이런상도 함께 받았습니다.

마지막 득점에 성공하는 순간 환호하는 에디 먹스 선수
이번 월드컵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참가 규모나 성적면에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특히나 여러 한국 선수들의 국제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뜻깊은 대회였습니다. 앞으로 이 기록들은 꾸준히 갱신되어 나아갈 것이며,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 선수가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또 수많은 한국 선수들의 이름이 세계 탑 랭킹에 도배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11월에 열리는 수원 월드컵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우수한 한국 선수들이 개최국 시드와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안고 좋은 성적을 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랑스런 한국 선수단 : 좌측부터 김경률, 김행직, 김재근, 조재호, 김정규(감독), 정문영, 허정한, 김성관, 최성원, 강동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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